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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 하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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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디도 하프나르는 네덜란드 출신으로, 일본에서 선수와 코치로 활동한 축구 인물이다. 1979년 ADO 덴 하흐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1986년 일본으로 건너가 마쓰다에서 뛰며 1986-87 시즌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이후 요미우리,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 주빌로 이와타, 콘사돌레 삿포로 등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며, 1998년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나고야 그램퍼스, 시미즈 에스펄스, 수원 삼성 블루윙즈 등에서 골키퍼 코치로 활동했으며, JFA 공인 S급 코치 라이선스를 취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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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 하프나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12년의 하프나르 디도
2012년의 하프나르
출생일1957년 9월 26일
출생지네덜란드 하제르스우더도르프
신장1.86m
포지션골키퍼
선수 경력
1979–1985덴하흐
1986–1989마쓰다
1989–1991요미우리
1992–1994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
1995–1996주빌로 이와타
1997–1998콘사돌레 삿포로
1979–198580
1986–198971
1989–19914
1992–199446
1995–199668
1997–199860
1979–19850
1986–19890
1989–19910
1992–19940
1995–19960
1997–19980
총 출장329
총 득점0
국가대표 경력
지도자 경력
1991–1992도요타 자동차 (GK 코치)
1993일본 (GK 코치)
1995–1996주빌로 이와타 (GK 코치)
1999–2002콘사돌레 삿포로 (GK 코치)
2003–2006요코하마 F. 마리노스 (GK 코치)
2007류츠케이자이대학교 (코치)
2008–2011나고야 그램퍼스 (코치)
2011–2012시미즈 에스펄스 (코치)
2013–2014수원 삼성 블루윙즈 (GK 코치)
수상
마쓰다
준우승천황배 (1987)
요미우리
우승일본 사커 리그 (1990/91)
준우승일본 사커 리그 (1989/90)

2. 선수 경력

디도 하프나르는 네덜란드 ADO 덴 하흐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79년부터 1985년까지 활동했다.[1][7] 1986년 일본으로 건너가 마쓰다 SC에서 코치 겸 선수로 뛰며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11에 두 차례 선정되는 등 활약했다.[1][6] 이후 요미우리 축구 클럽과 그 하부 팀을 거쳤다.[1][6]

1991년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의 골키퍼 코치로 부임했으나, J1 리그 출범과 함께 1992년 선수로 복귀했다.[1][6] 1994년에는 가족과 함께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2][3][4] 이후 주빌로 이와타콘사돌레 삿포로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며, 삿포로 소속으로 1997년 일본 풋볼 리그 우승과 J1 리그 승격에 기여했다.[1] 1998 시즌을 끝으로 41세의 나이에 현역에서 은퇴했다.[1]

'''선수 경력 요약'''

2. 1. 네덜란드

하프나르는 1957년 9월 26일 네덜란드 하제르스워우데-도르프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축구를 보다가 다른 선수들과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골키퍼를 보고 충격을 받아 골키퍼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다. 축구를 시작한 8세 때 "하츠즈크루츠 보이즈"에 골키퍼로 입단한 이후 계속 골키퍼 포지션만을 고집하며 훈련했다.[6]

19세의 나이에 ADO 덴 하흐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하였으나, 데뷔전에서는 0-3으로 패배했다.[7] 그는 1979년에 ADO 덴 하흐에 정식 입단하여 1985년까지 활동했으며, 이 기간 동안 총 80경기에 출전했다.[1] 특히 1980년대 초반에는 팀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다.[7]

2. 2. 일본

1986년, 당시 일본 축구 리그(JSL) 1부 소속이던 마쓰다 SC (현 산프레체 히로시마) 감독 한스 오프트의 권유로 코치 겸 선수로 일본에 왔다.[1][6] 마쓰다에서 그는 1986-87 시즌 베스트 11에 선정되었고, 팀의 1987년 천황배 준우승에 기여했다.[1] 1987-88 시즌에도 JSL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6] 1988년 팀이 2부 리그로 강등되었고,[1] 1989년에는 PSV 에인트호벤의 영입 제안이 있었으나 마쓰다 SC가 요구한 높은 이적료 때문에 무산되었다. 이에 대한 실망감과 팀의 강등으로 인해 요미우리 축구 클럽으로 이적했다.[6]

요미우리 클럽에서는 부상을 반복했고, 외국인 골키퍼를 선호하지 않았던 카를루스 감독 아래에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1][6] 1990년 코치직 제안을 받았으나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싶어 거절하고, 당시 JSL 2부 소속이던 요미우리 주니오르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했다.[6]

1991년, 도요타 자동차 (현 나고야 그램퍼스)의 골키퍼 코치로 취임했지만, 1992년 J1 리그 출범과 함께 선수로 복귀하여 나고야와 프로 계약을 맺었다.[1][6] 나고야에서는 이토 유지와 주전 경쟁을 하며 많은 경기에 출전했다.[1] 1993년에는 한스 오프트 감독이 이끄는 일본 대표팀의 골키퍼 코치를 맡아 199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에 참가했고, 도하의 비극을 경험했다.[6] 1994년 1월, 하프나르와 그의 가족은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2][3][4]

1995년 주빌로 이와타로 이적하여 골키퍼 코치를 겸임하며 주전 선수로 활약했다.[1][6] 1997년에는 당시 일본 풋볼 리그(JFL) 소속이던 콘사돌레 삿포로로 이적했다.[1] 삿포로에서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팀의 1997년 JFL 우승 및 J1 리그 승격에 기여했다.[1] 1998 시즌을 끝으로 41세의 나이에 현역에서 은퇴했다.[1]

은퇴 후에는 일본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다. 콘사돌레 삿포로와 요코하마 F. 마리노스에서 골키퍼 코치를 맡았고, 2007년에는 류쓰케이자이 대학 코치를 역임했다. 2008년부터 2011년 9월까지는 나고야 그램퍼스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로 활동했으며, 2011년 9월부터 2012년까지 시미즈 에스펄스의 코치를 맡았다.[6]

사적으로는 장녀와 두 아들 마이크, 닉키가 있으며, 두 아들 모두 축구 선수로 활동했다.[6]

3. 지도자 경력

1991년 선수 생활을 은퇴한 하프나르는 도요타 자동차 (이후 나고야 그램퍼스)의 골키퍼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1993년에는 과거 마쓰다 시절 감독이었던 한스 오프트가 이끄는 일본 국가대표팀의 골키퍼 코치를 겸임하며 1994년 월드컵 예선을 치렀다. 1995년 주빌로 이와타로 이적하여 선수 겸 골키퍼 코치로 활동하다 1996 시즌 후 팀을 떠났다.

1998 시즌을 끝으로 콘사돌레 삿포로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한 뒤, 1999년부터 오카다 타케시 감독 아래 콘사돌레 삿포로의 골키퍼 코치를 맡아 2002년까지 활동했다. 2003년에는 요코하마 F. 마리노스로 옮겨 다시 오카다 감독과 함께했으며, 팀의 2003년과 2004년 J1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요코하마에서는 2006년까지 골키퍼 코치로 있었다.

2008년에는 친정팀인 나고야 그램퍼스로 복귀하여 어시스턴트 코치를 맡았고, 2011년 9월에는 시미즈 에스펄스로 이적하여 사나다 마사노리의 후임으로 골키퍼 코치가 되었다.[5] 2013년부터 2014년까지는 대한민국 K리그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골키퍼 코치로 활동했다.

연도소속직책
1986년 - 1988년마쓰다GK 코치
1991년토요타 자동차GK 코치
1993년일본 대표팀GK 코치
1995년 - 1996년주빌로 이와타GK 코치 (선수 겸임)
1999년 - 2002년콘사돌레 삿포로GK 코치
2003년 - 2006년요코하마 F. 마리노스GK 코치
2005년-JFA 공인 S급 코치 라이선스 취득
2007년류츠케이자이 대학코치
2007년U-16 일본 대표팀GK 코치 (바니코프 국제 유스 대회)
2008년 - 2011년 9월나고야 그램퍼스어시스턴트 코치
2011년 9월 - 2012년시미즈 에스펄스톱팀 코치
2013년 - 2014년수원 삼성 블루윙즈GK 코치


4. 개인사

7세 때 축구를 보다가 필드 안의 다른 선수들과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골키퍼를 보고 충격을 받아 골키퍼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다. 8세에 축구를 시작하며 "하츠즈크루츠 보이즈"에 골키퍼로 입단한 이후, 오직 골키퍼 포지션만을 고집하며 훈련에 매진했다.[6] 경기 중 큰 소리로 지시하며 공을 다루는 그의 모습에 흥미를 느낀 기다가 교제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1986년, 당시 일본 축구 리그(JSL) 1부 소속 마쓰다 SC (현 산프레체 히로시마) 감독이었던 한스 오프트의 권유로 코치 겸 선수로 일본에 오게 되었다.[6] 1993년[8] 가족과 함께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귀화 신청 당시, 이름이 '하마나 데레크'로 잘못 알려지는 해프닝이 있었으나, 실제 귀화명은 가타카나 표기인 '하프나 디도'이다. 네덜란드어 이름을 일본어로 표기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으며, 일본 생활에 필요한 도장을 '하마나'라는 이름으로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중국어 표기로는 '''哈维纳尔 迪多'''(일본 한자 표기: '''哈維納爾 迪多''')가 있지만, 일본 내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자녀로는 장녀와 아들 마이크, 니키가 있다. 장남 마이크를 공격수(FW), 차남 니키를 수비수(DF) 역할에 비유하며 직접 골키퍼(GK)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두 아들이 골키퍼 포지션에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아, 골키퍼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아버지로서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선수 시절에는 경기 전 연습에서 팬들의 응원 콜이 나오면 손을 흔들어 화답하는 등 팬 서비스를 중요시하는 모습으로 많은 팬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갔다. 삿포로에서는 은퇴 후 골키퍼 코치로 활동할 때도 경기 전 연습에 모습을 드러내면 팬들의 콜을 받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코치 시절에도 팬들의 콜에 손을 흔들어 응답하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마쓰다 재적 시절의 플레이를 본 사람에 따르면,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와 공을 막아내는 등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으며, 24시간 축구만 생각하는 프로 정신은 신토 가쓰요시 등 동료 선수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본인은 골키퍼라는 역할에 강한 신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낫토를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고야 코치 시절인 2010년, 낫토를 매우 좋아하는 드라간 스토이코비치 감독과 "리그 우승 시 낫토를 먹겠다"는 내기를 했다. 나고야가 실제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일본 생활 25년 만에 처음으로 낫토를 먹게 되었는데, 이때 겨자를 섞어 먹었다고 밝혔다.[9][10]

오구라 다카시는 그가 매우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TV 프로그램 '볼레의 호랑이' 출연 당시에도 이러한 성격이 드러났다. 1995년 주빌로 이와타에서 골키퍼 코치를 겸임할 당시, 골키퍼였던 오가미 도모아키는 디도가 선수로서의 경쟁심이 강해 다른 골키퍼들에게는 거의 지도할 시간이 없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삿포로 소속이던 1997년 5월 25일, 아쓰베쓰에서 열린 가와사키 프론탈레와의 경기에서는 팀이 뒤지고 있던 후반, 공격 숫자를 확보하기 위해 자진해서 모든 스로인을 처리했으며, 동점골 이후 후반 추가시간에 얻은 코너킥 상황에서는 장신을 활용하기 위해 직접 상대 골문 앞까지 올라가는 등 승리에 대한 강한 집념을 보여주며 팀의 극적인 역전승에 기여했다.

미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당시 일본 대표팀 GK 코치로서 도하의 비극을 현장에서 경험했는데,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음에도 벤치에서 골키퍼 장갑을 착용하고 피치를 바라보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2014년에는 모국 네덜란드에서 경기장 잔디 관리 및 조성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5. 수상


  • JSL 베스트 11: 1987/88
  • JFL 베스트 11: 1997
  • JFL 베스트 골키퍼상: 1997

참조

[1] 웹사이트 Statistieken: Dido Havenaar http://www.adostats.[...] ADOSTATS 2013-08-11
[2] 웹사이트 Havenaar: Japan is where my roots are https://www.fifa.com[...] FIFA.com 2012-05-22
[3] J리그 jleague.jp https://www.jleague.[...]
[4] 웹사이트 Shimizu S-Pulse https://www.s-pulse.[...]
[5] 웹사이트 Shimizu S-Pulse https://www.s-pulse.[...]
[6] 간행물 Sports Graphic Number、文藝春秋、1992年12月20日号、68頁 文藝春秋 1992-12-20
[7] 웹사이트 Dido Havenaar http://www.adostats.[...]
[8] 고시 1993年(平成5年)法務省告示第382号「日本国に帰化を許可する件」 법무부 1993
[9] 뉴스 【J1:第33節 磐田 vs 名古屋】ストイコビッチ監督(名古屋)記者会見コメント http://www.jsgoal.jp[...] J's GOAL 2010-11-27
[10] 뉴스 2010年12月15日付中日スポーツ5面 중일 스포츠 201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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